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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4-08-01
만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의 손이 지닌 매력에 끌렸다. 섬세하고 균형잡힌, 추상의 생각을 현실 공간에 3차원의 매스로 구상화하는 통로, 그의 손. 이제는 그 손이 온 몸으로 만들어 낸 새로운 작품을 안고 있다. 일생의 걸작이 되길 빌며.
첫 교회 방문. 엄마 아빠 사이에서
인생도 어느 정도 알 만 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이후 새로이 식구로 맞이하게 되는 손자라면, 한창 버거웠던 젊은 시절의 자식들과는 종류가 다른 애틋한 감정이 피어남직 하다. 이 생명의 뿌리가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지금은 품을 벗어나 출가한 자녀들의 어린 시절이 솔솔 꼬리를 물고 떠오르리라. 사랑하는 이들을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하다. 장인, 장모님 두 분.
2004-08-02
홍제천 변.
2004-08-03
아, 지금도 나는 밤의 그 깊은 안식을 너무나 사랑한다. 고되었던 시기, 잠자리에 눕는 때는 게으름이 허락되던 유일한 시간이었고, 비록 너댓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 시간만은 나의 소유였다. 내일이 오지 말았으면, 하는 맹랑한 바람을 품고 눈을 감지만 야속하게도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다.
2004-08-05
함께 공간을 저어간다.
나무 그림자가 빈 간판에 형상을 불어넣는다.
2004-08-06
바람처럼 내게 다가왔다 빨간 빛을 깜빡이며 멀어져 간 사람. 홍제천 변.
2004-08-07
함께 산책했던 것이 언제였는지도 아득할 무렵, 아주머니께 잠든 예안이를 맡겨두고 잠시 집 근처의 공원에 올랐다. 옅은 구름으로 덮인 산정의 공원은 차분했다. 자그마한 집들 주변의 어설프지만 정성어린 손길이 깃든 화단들을 살펴보며 이들이 참 부자라는 생각을 했다. 높다란 담벽 너머 정원사가 솜씨 부린 정원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, 집 바깥 담장 너머까지 꽃을 가꾸는 사람들. 그리 살고 싶다.
"시원한 꿈 꾸길"
2004-08-08
예안이랑 나랑
2004-08-09
성은형은 여전히 유능하면서 껄렁했고, 종원이는 깊은 물처럼 잔잔했다. 마치 십여년전 대학부 때처럼 눈을 반짝이며 꿈을 이야기했다. 이번에도 후배들에게 멋진 저녁을 마련해준 내 영원한 리더, 성은형께 감사.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이들을 만나는 건, 신나는 일이다. 그들의 도전에서 나의 모험에도 용기가 생기고, 그들의 비전에서 내 시야가 더 넓어진다.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그들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고 있었고, 나 역시 도상에 있었다. 우리가 조로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했고, 각자를 이끌 주님의 계획이 자못 궁금해졌다. 부르셨으니, 쓰실 것이다. 오직 주님만 영광 받으소서. 아멘, 아멘.
2004-08-10때가 되면 먹어야만 하는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드는 발걸음은 때로 우울하다. 저만치 늘 지나치던 교회 하나가 눈에 띄었고, 입구에는 '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- 누구나 들어와 기도하실 수 있습니다'하는 자그마한 패가 붙어 있었다. 무더워 숨이 막히는 예배실이었지만 고맙게도 아무도 없었고, 난 땀을 흘렸을 망정 조용히 나와 그분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. 누구에게나 신과 독대할 수 있는 혼자만의 비밀공간 - 많은 선지자들에겐 그곳이 광야였다 - 이 필요하다. 길고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을 헤매던 시기, 학교 한켠의 성당은 내게 그런 장소가 되어 주었고, 이젠 이 작은 예배실이 날 위해 예비되어 있다. 그리 크지 않은 교회이지만 강대 뒤의 자연스러운 나무 십자가가 인상적이다.
2004-08-13
나무 그림자, 의자에 내려 앉은 깊은 밤.
2004-08-14
취재차 찾았던 대림미술관 옆 경복궁 돌담길. 마침 다음 날이 광복절이었다.
사진:최정혜느지막한 오후, 오랜만에 예안이와 산책을 나왔다. 번쩍하는 플래시 불빛에 놀란듯.
2004-08-15
외할머니와 예안. 어지간히도 뻐댄다.
할아버지, 할머니와 예안. 두 분 다 손자가 마냥 이쁘신듯.
2004-08-20
오랫동안 기거하며 뼈와 살을 키웠던 알의 껍질을 깨고 나와 자신의 다리로 땅을 딛고 서는 것은 힘든 일이다. 지난 8월 20일, 한 사진가가 십수 년간 일했던 회사를 떠나며 그간 찍었던 주변 사람들의 사진을 한데 붙이고 쫑파티를 열였다. 십년 넘게 묵은 사진 속에는 어느새 중견이 되고 원로가 된 그리운 사람들로 가득하다. 사진가 정범태, 권태균, 이창수, 여동완, 심환근, 이갑철, 양현모, 이규철, 소설가 이윤기, 북디자이너 정병규…. 그가 바라보는 꿈이 바른 열매 맺길 진심으로 빈다. 좌로부터 사진가 양현모, 심환근, 이규철.
2004-08-21
집안에만 갇혀있던 정혜가 잠시 바람도 쐴 겸 오랜만에 들렀던 CCF. 처녀 총각들만 그득한 곳이라 다들 아이를 끔찍이도 이뻐했고, 예안이를 위해 기도해주었다. 아름다운 사람들, 아름다운 모임, 아름다운 열매 많이 맺길. 결국 우리는 열매로써 판단받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.
2004-08-25
여러 시간을 쏟아부어 여주대 학생들의 기사 편집을 마무리한 다음, 정진국 선생의 앙리 카르티에-브레송 기사를 열었다. 매킨토시를 사용하시는 분이라(외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유별난 것으로 비친다) 텍스트를 열기까지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. 내용은 익히 알던 것들이었지만 문장은 아름다왔고, 오래전 읽었던 선생의 문체보다 더한층 세련되어 있었다. 이 정도의 글이 커버스토리로 나간다면 책이 빛날 것임에 분명했다. 흔쾌히 원고 청탁을 받아주신 선생께 고마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.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나이지만, 일하는 도중에 이리 감동하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.
2004-08-27
키스 헤링 턱받이로 멋을 낸 예안. 개 짖는 소리에 깨지 않아야 할텐데.^^
2004-08-28
새로운 부부 한 쌍이 탄생했다. 김성진 기자의 결혼. 언젠가 그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. 그의 결혼식. 친구였다면 그가 농반진반처럼 건넸던 사진 촬영 부탁을 모양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하지 말았어야 했다. 결국 난 그의 친구가 되기 보다 상사로서의 체면을 더 차린 셈이 되고 말았다. 촬영은 우아한 모양새를 갖추기 힘들다. 좋은 앵글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의자 위로 뛰어 오르거나 바지를 더럽히며 바닥에 엎드려야 하고, 순간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폐를 끼칠 수 밖에 없다. 조금 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(순전히 내 만족을 위해서)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다니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시는 부모님을 의식하는 것도 부담스럽다. 그런 모습 보다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하객 처신을 하는 것이 여러 모로 속 편하긴 하다. 사진 결과에 따른 두려움도 없고, 늘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바짝 긴장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. 하지만 순간을 포착하여 몇몇에게 평생의 선물을 마련해준다는 건 - 결혼식 사진 - 보람있고 기쁜 일이다. 적어도 내겐 그렇다.
어디론가 떠나는 것들은 나를 가슴 시리게 한다.
2004-08-29
아, 고양이의 그 우아함과 매력!
2004-08-30
큰 나무는 신령하다. 켜켜이 퇴적된 시간을 품고 있기 때문일까.
2004-08-31
한 분야의 거목을 만나는 기쁨. 주명덕 선생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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