인터넷 한겨레 코리안네트워크에 연재되었던 칼럼. 벨기에 연하남과 결혼하여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강마담의 솔직담백한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이다.
보면서..결혼이라는 것에대해 생각해 보게된다.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게기가 될수있다는 사실이..
몇몇 인상깊었던 부분..
신주, 어디 갔었어?” “귀찮게 굴지 마.” “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야?” “당신이 우리한테 신경이나 써? 그런 사람이 그렇게 무심해? 당신은 나랑 에밀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어. 난 알아.” 이에 에릭이 단호한 목소리로..반격을 했다. “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거 당신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어. 내가 잘못한 거, 사과할게. 그러나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뒤흔들지는 말아. 나를 넘어뜨리고, 나를 비참하게 하지는 말아 줘. 왜 내가 당신과 에밀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? 그런 소리는 하지 마.” (그건 사실이다.-.- 약간 기가 죽은 강마담..)‘ “그렇..다..면.. 왜..에헴..” 에릭은 슬픈 눈이 되었다. 어! 열정적인 레트 버틀러는 아니지만 지적 매력의 에쉴리 같긴 하다. (난 여전히 표독스런 스칼렛이얌^^) “신주, 나에게 무슨 욕을 해도 좋으니까 나가는 것만은 말아 줘. 난 종일 너무 두렵고 슬펐어.” 헉! 슬..펐..어? 두...려..웠...어? 그는 나에게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렸다. 감정의 코드.. 강마담의 비단결 같은 감정을 건드린 것이었다. (요새 비단 시세가 왜 이리 떨어졌누..-.-) “신주, 종일 당신이 어디 갔을까 걱정했어. 기숙사 주차장을 다 뒤졌어. 당신이 날 떠나버리는 상황을 생각하니 끔찍했어. 슬펐어. 왜 우리가 이렇게 소통을 못하지? 신주, 우리 서로에게 고통을 주면서 대화를 하지는 말자. 그것은 자기 파괴적이야. 우리가 왜 부부싸움을 하나? 더 좋은 부부관계를 위해서 하는 거 아니야? 고통을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잖아?” 에릭이 옳은 소리를 했다. 속으로 뜨끔했다. 나는 그를 괴롭히려고 집을 나간 것이었기 때문이다. 나는 그가 내가 아픈 만큼 아프기를 바랬다. 나의 목표는 그에게 내 뜻을 이해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되어버렸었다. 어떤 면에서 보자면 나는 부부싸움은 그렇게 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던 거 같다. 울고, 상처주고, 화내고, 상처받고..... 에릭은 말을 이었다. “만약 나랑 더 이상 말하기 싫으면, 나랑 같이 있기 싫으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해줘. 그냥 말없이 나가지는 말아 줘. 난 그러면 무서워. 말을 하고 나간다면 며칠이라도 기다릴게.” 어어... 에릭이 고단수였다. 감정에 논리에...논리에 감정에.. 그 날, 나는 에릭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만 했다. 이후로 나는 기분 나쁘다고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. 가끔 기분이 나쁠 때 친정으로 갈 수 있는 여성들이 부럽긴 하다. 그냥 친정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럽다. 그러나 이제는 설사 친정이 가까이 있더라도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. 왜? 부부싸움을 감정적으로 더 확장해버리고, 부부관계 안에서 해결되어야할 일을 대가족의 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. 친정악담, 시댁 악담이 오갈 때, 다른 이들이 끼어 들면 끼어 들수록 부부관계의 대화법에는 손상이 오기 마련이다. 부부끼리 해결해야할 문제는 부부사이에서 해결해야하는 거 같다. 집 안에서...밖으로 나가지 말고. 그리고 배우자가 집 밖으로 뛰쳐나갈 때까지 밀어붙이지 말고.
나는 내가 예수쟁이가 된 날, 예루살렘에서 하이파로 가는 버스의 구석자리에서 뉘엿뉘엿 지는 석양을 보면서 숨죽여 울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. 내가 바뀌고 나서 세상이 바뀌어 보이던 그 기적의 경험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. 그 이후 하늘은 나의 변화를 상기시켜주고, 그 옛날 나의 회개 기도를 상기시켜주게 되었다. .... 이제 남은 문제는 신앙 문제이다. 그리고 그게 가장 힘든 문제인 거 같다. 왜? 분석과 이해에 한계가 있으니까...어느 순간에는 '믿음'의 차원으로 도약해야하는 문제이므로.. 설득과 토론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신앙의 문제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,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것 같다. (이제껏 몇 번 피터지게 토론해본 적이 있지만 과히 긍정적인 경험이 아니었다)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디까지 내가 내 신앙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가, 어디까지 아이들 아빠의 무신앙을 존중해야 하는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. 아이들에게 "하늘을 봐!" 하고서 에릭은 "에밀, 꼴렛, 여기 망원경을 봐봐. 저 빤짝이는 게 목성이야. 보이니? 그리고 내일 모래는 보름달이 되는데...." 하고 이야기 하는데 나는 "에밀, 꼴렛, 하나님이 이 모든 세상을 만드신 거야. 하늘도, 바다도, 해도 달도...." 하고 있다. 그런데 말이다. 나는 "에밀 꼴렛, 저게 목성이야. 태양계에는 말야...." 하고 과학적인 이야기할 수 있다. 그러나 에릭은 "하나님이 말야, 이 모든 만물을......" 하고 종교적인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. 그게..문제다. ..... 평소에 입을 다물지 못하기로 소문난 나이지만..... 나는 이 문제만은 내가 입을 닫고 그냥 기다려야한다고 생각한다. 소리내어 하는 기도도 삼간 채, 우물우물 기도하면서 그냥 사랑과 인내로서 (거창하긴...-.-)가만히 기다리고 있다. (제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...빛나리는 지금 제 컴퓨터 책상 옆의 침대에서 행복한 얼굴로 쿨쿨 자고 있습니다.-.-) 종교가 없는 남편과 살면서 느낀 갈증. 남편과의 사랑 한 가운데 남겨져 있는 여백. 그것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. 그러나 그 갈증과 여백의 삶이 나는 좋다. 여백이 채워지고, 갈증이 해소될 희망이, 내가 그를 더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그 모든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.
책도 나왔다.
